마태복음 5장을 읽으면 윤동주 시인의 <팔복>이 항상 떠올려진다.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 팔복(八福), 윤동주
특히 5장 4절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애통할 것이오... '로 변해 내게 오랫동안 각인되어져버렸다. 그래서 윤동주가 실제로 슬퍼하는 자로 썼는 지, 애통하는 자로 썼는 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사실 그 말이 그 말임에도.
사람은 습관처럼 같은 행동을 번복한다. 사랑하는 자는 사랑에 익숙해지고, 애통하는 자는 애통에 익숙해 진다. 감사와 기쁨을 얘기하지만, 삶은 이중적이라, 매순간 비참한 기분에 몰릴 때가 많다. 돌아보면 기쁨보다 슬픔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생 자체가 십자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을, 그 복이 겨우 위로라는 것에 불만스러웠다.
오늘은 토네이도 주의보가 내렸다. 자연재해와 멀었던 뉴욕에 토네이도라니. 비바람이 하루종일 심란하게 했다. 그리고 갖 여섯살이 된 딸은 점심을 먹다가 여러가지를 물어왔다.
-'그래서, 아빠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멈추게 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취할 거지?'
-'아빠, 내일은 Earth Day인데 아빠는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거지?'
세상은 지금 생존을 위협받는 전쟁터인데. 미국에서만 4만명이 사망했는데.
아빠는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 Stay Home. 그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네. 그리고 너와 기도. 타인을 위한 애통.
진실로, 살면서 위로를 받을 수 있다는 것, 힘이요 복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도 아닌데. 위로를 주고 받고 싶어하는. 나약한 나.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4절
-April., 20. 2020.
p.s. 그리고 2년이 다되가는 오늘 코비드로 인한 사망자는 미국에서만 90만명을 넘었고 매일 평균 2천5백명이 사망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 지고 있다. 고물가에 고유가에 인종간의 불신, 아시안에 대한 묻지마 폭력. 비대면 올림픽이 치뤄지고 있고, 저멀리 우크라이나에선 전운이 깃들고 있다.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호소할 수 조차 없는 우울증이 깊어지는 우리들. 우리의 슬픔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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