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rs to 2 Wks - (P)oetry 시

P006.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 신철규

TMLove 2025. 6. 10. 03:21

 

우리가 사는 별은 너무 작아서

너와 나는 이 별의 반대편에 집을 짓고 산다

내가 밤이면 너는 낮이어서

내가 캄캄하면 너는 환해서

우리의 눈동자는 조금씩 희미해지거나 짙어졌다

...

나는 네게 하루에 하나씩

재밌고 우스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가 못 보고 지나친 유성에 대해

행성의 반대편에만 잠시 들렀다가 떠난 외계인들에 대해

너는 거짓말 하지 마, 라며 손사래를 친다

 

바다가 있으면 좋겠다 

너와 나 사이에

 

너에게 한없이 헤엄쳐갈 수 있는 바다가

간간이 파도가 높아서 포기해버리고 싶은 바다가

 

...

<소행성> 부분 발췌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5월에 읽는 시집으로 신철규 시인의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를 골랐다. 

2017년 발매한 1판 2쇄본. 

 

시집에 담긴 시들이 미치도록 빛나서 

어설픈 감상이라도 주저리 주저리 남기려면 한 달은 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좋은 글귀들 하나 하나 밑줄을 긋다가 보니 

대부분의 시와 문장이 노랗게 덧칠 되어

이것이 시집인 지, 컬러링 북인지 

 

이럴 것이라면 그냥 그의 시를 받아쓰기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주욱, 표지에서 표지까지

 

감상을 남기길 원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주로 훗날의 내가 읽어 지금 담았던 감정을 회상해 보길 원하는 것.

한정된 공간에 지금 내가 남길 수 있는 것이라곤

그의 시에 질척대는 마음과 

슬픔을 이해하려고 한 발 걸친 나의 머쓱함 정도일까.

 

 

십자가는 높은 곳에 있고

밤은 달을 거대한 숟가락으로 파먹는다

 

한 사람이 엎드려서 울고 있다

 

눈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막으려고

흐르는 눈물을 두 손으로 받고 있다

 

문득 뒤돌아보는 자의 얼굴이 하얗게 굳어갈 때

바닥 모를 슬픔이 눈부셔서 온몸이 허물어질 때

 

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 밖에 없다

 

눈을 감으면 물에 불은 나무토막 하나가 눈 속을 떠다닌다

 

신이 그의 등에 걸터앉아 있기라도 하듯

그의 허리는 펴지지 않는다

 

못 박힐 손과 발을 몸안으로 말아넣고

그는 돌처럼 단단한 눈물방울이 되어간다

 

밤은,

달이 뿔이 될 때까지 숟가락질을 멈추지 않는다

 

- <눈물의 중력> 전문 

 

 

시집 전반에 다양한 슬픔이 녹아 있다. 

가난, 차별, 시위, 전쟁, 세월호, ... 

하나 하나에 감정을 대비하고 소비하고 

가슴이 벅차고, 

감당하기 벅차고. 

시대를 조명하는 글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문장은 <슬픔의 자전>이란 시에서 등장한다.

재개발로 인해 쫒겨난 걸로 여겨지는 가정사에

별것 아닌 것 같은 한 아이의 슬픔이 한 꼬집 더한 가족의 이야기.

세상 많은 슬픔과 비견하자니 과장되게 부풀어 오른 복어의 배 같이 하찮게 보일

그 아이에겐 삶의 전부같은 슬픔이, 그 가족의 서글픔이 

가만히 들어보면

지구만큼 눈물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지구 속은 눈물로 가득차 있다

 

타워팰리스 근처 빈민촌에 사는 아이들의 인터뷰

반에서 유일하게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이는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

타워팰리스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낮은 무허가 건물들

초대받지 못한 자들의 식탁

 

그녀는 사과를 매만지며 오래된 추방을 떠올린다

그녀는 조심조심 사과를 깎는다

자전의 기울기만큼 사과를 기울인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준다

속살을 파고드는 칼날

 

아이는 텅 빈 접시에 먹고 싶은 음식의 이름을 손가락에

물을 묻혀 하나씩 적는다

 

사과를 한 바퀴 돌릴 때마다

끊어질 듯 말 듯 떨리는 사과 껍질

그녀의 눈동자는 우물처럼 검고 맑고 깊다

 

혀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다

그녀 속에서 얼마나 오래 굴렀기에 저렇게

둥글게 툭툭

사과 속살은 누렇게 변해가고

 

식탁의 모서리에 앉아 우리는 서로의 입속에

사과 조각을 넣어준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 짠맛이 돈다

 

처음 자전을 시작한 행성처럼 우리는 먹먹했다

 

-<슬픔의 자전> 전문 

 

초집적되어 있는 감정의 짓누름 속에

처음 자전을 시작하는

행성의 고행을 그려본다

세상 모든 슬픔을 짊어진 몸을 

끝이 없는 어려운 행군을 

사과 껍질 벗기듯 돌다 보면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변색된 내면을 마주하는 길을 

 

개안을 하고 동화되지만

아이의 슬픔을 어떤 것도 채워 줄 수 없다. 

참 먹먹한 시였다.

 

신철규 시인의 시집은 처음 접했지만, 팬이 되버렸다. 

예전에는 당연했던 책선물이나 음반 선물이 짐처럼 여겨지는 요즘

누군가에게 생일선물로 주고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감정의 교류를 밖으로 이어보고 싶었다.

 

 

https://youtu.be/qg40imnWXG8?si=9L4viFNjOlgkzPr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