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rs to 2 Wks - (P)oetry 시

P008.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 이외수

TMLove 2025. 7. 1. 12:15

 

...

내 인생은 아직도 공사중입니다

보행에 불편을 드리지는 않았는지요

오래 전부터

그대에게 엽서를 씁니다

그러나 주소를 몰라

보낼 수 없습니다

서랍을 열어도

온 천지에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

한평생 그리움은 불치병입니다

 

- <6月> 부분 발췌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이외수 저

 

6월에는 한 권의 시집을 더 읽었다. 이외수의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

2003년 초판 발행본. 

 

내게 이외수는 소설로 먼저 다가왔다.

고전 번역소설이 아니면 추리소설들을 주로 읽던 1990년대의 나는 

출처가 불분명한 채 집안에 굴러다니던 <벽오금학도>를 읽은 계기로 

그의 신간이 나오면 습관처럼 바로 구입했다.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 만화, 그리고 시까지. 

그는 참 많이 그리고 많이 써서 매년 신간이 발간되는데,

어느 해에는 여러 권도 나왔던 것 같다. 

 

춘천의 자택 건축에 비용이 많이 들어 양판소처럼 찍어낸다는 빈정거림이 있을 때에도

여전한 촌철살인 글솜씨에 구입을 주저하지 않았다. 

 칼, 그리고 사부님 싸부님. 꿈꾸는 식물, 괴물, 장외인간...

그의 저서들을 줄줄이 읊을 정도로 팬이었던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의 대부분의 저서들은 두번 읽은 경험이 없는데 

감정에 매몰되어 두번은 못볼 것 같아서 였을 것 같았다.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는 것이 없는 백지 상태가 된 지금에야

다시 그의 책들을 조우하는 좋은 때를 맞이한 것 같았다. 

 

가난, 추위, 얼음밥, 그리움, 사랑 그의 언어들이 그리워

예전에 몇 번은 음미했을 그러나 기억이 가물거리던 시집을 꺼냈다. 

이십년이 훌쩍 지났는데 새롭다. 글에서 와닿는 아픔이 여전하고.

청춘을 함께 했던 글이라 그런지

일기를 쓰지 않고 살아온 내겐 

대용품과 같다. 

 

그대는 오지 않았다

사랑이 깊을 수록 상처도 깊어

그리움 짙푸른 여름 한나절

눈부시게 표백되는 시간

가로질러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음악으로 

멀어지는 강물 소리

 

-<약속> 전문

 

 

화석. 어떤 그리움은 망부석이 되기도 하고

화석이 되기도 하며

가슴안에 도저히 꺼트리지 못하는 

작은 불씨로 남아

오늘도 마음이 식지 말라고 

온기를 나누고 있다. 

 

어릴 때는 미래를 꿈꾸고 젊을 때는 현재에 방황하고

나이가 들어선 과거에 연연해 한다는

닮은 모습들이 가득하다.

그리움을 품은 이들이 대부분 느낄 동질감에 사로잡힌다.  

그 시절의 그리움은 정말 눈부시게 표백되어

우리 가슴에 간직된다. 

그는 정말 사랑을 많이 해보고

그리움을 오래 간직한 사람같다. 

 

이 책이 발간 될 즈음, 그는 지천명이었겠다.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많은 나이도 아니었을 때에도

행색이 추레하고 나이에 비해 고령으로 보였다.

그 모습이 꼭 도인같아서

그의 글엔 풀어 쓴 도경같은 느낌이 든다.

어려운 단어들은 별로 쓰지 않아

주변의 흔한 단어들을 주워모아 쌓은 글이

노래가 되고 시로 품는다.

그게 또 뭐라고 마음 한켠을 허물고 울림으로 채운다.

 

...

작별 끝에 비로소 알게 되더라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노래가 되지 않고

더러는 회색 하늘에 머물러서

울음이 되더라

범람하는 울음이 되더라

내 영혼을 허물더라

 

-<비 오는 날 달맞이 꽃에게> 부분 발췌

 

 

2022년 평생 야인같던 그의 나이 향년 76세

시인이며 화가, 그리고 작가였던 그가 별세했을 때,

추억을 지탱하던 기둥 하나가 허물어진 느낌을 받았다. 

 

그가 터를 잡고 오랜기간 집필을 해왔던 곳

춘천또한 생각났다.

그 도시에 대한 사랑 가득한 글들 때문에

연고가 없더라도 한번 쯤 들려보기를 원했는데

그의 사망 전에도, 그 후에도 여전히 버켓 리스트에만 존재한 채

가보지 못하고 있다.

 

5월의 내 사랑이 숨쉬는 곳

김현철의 ‘춘천가는 기차’를 들을 때부터

한번도 가보지 못한 청춘의 고향같은 곳

 

언젠가 그곳에 가기 위해, 기차에 올라

의암호에 들려 삼악산까지 돌아보고 

근처 카페에 들려 문학소년소녀처럼 책을 읽다 돌아오리라.

내 인생에 그런 멋진 허세를 언제쯤 부려 볼 수 있을까. 

 

나는 여전히 매일

데스크 앞 모니터 빛에 갖혀

업무에 헤어나오지 못하는 걸.

 

하루 그리고 하루

익숙해져야지

 

그런데도

읽고 또 읽어도,

변함없는

앞으로도 그의 글이 참 많이 그리워지겠다.

 

 

살아간다는 것은

저물어 간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사랑은 자주 흔들린다

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

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 

저물고

노래도 상처도 

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

나는

시린 무릎 감싸안으며

나지막이 

그대 이름 부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오늘도 

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다

 

-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전문 

 

 

 

이외수 

시인이며 소설가

1946년생으로 19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

2022년 4월 25일 76세의 나이로 별세.

 

https://youtu.be/82niqWPY6KE?si=c_RfB2pwPQWxJE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