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rs to 2 Wks - (P)oetry 시

P010. 단지 조금 이상한 - 강성은

TMLove 2025. 8. 16. 22:30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비로 변한다

사람들은 슬퍼서 점점 더 희미해져간다

사람들은 박물관의 공룡들처럼 텅빈 몸을 가진다

영혼이 스친다는 건 무슨 말일까

 

-<진눈깨비> 부분 발췌 

 

 

 

8월에 고른 시집은 소설가이며 시인인 강성은의 <단지 조금 이상한>이다. 

2013년도 초판. 사실 초판에 관한 정보는 없지만,

보통 시집들은 유명한 시인이 아니면

2판이 나오기 힘든 것이 출판시장의 현실이다 보니

어림짐작한다.

 

<단지 조금 이상한>은 문학과지성사의

시인선 430번째에 해당되는 시집이다.

이 시리즈들을 번호순으로 다 구입해서 책장을 꾸미는  상상을 했다. 

시집이 벽한칸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타인은 관심조차 주지 않을 것에 관하여

자기만족에 심취해 상상의 나래를 폈다.

정말 황홀할 것 같다. 

 

문학과 지성사 뿐만 아니라

창비나 문학동네 등 많은 유명출판사에서

매월 많은 시집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을텐데

사람들은 왜 이리 시에 관심이 줄었을까.

내 생각엔 편지를 쓰지 않게 되면서 부터 이지 않을까 싶다.

손편지가 당연시 되던 시대엔 그 긴 공백의 편지지를 채우기 위해

곧잘 시를 애용했다.

연애편지 뿐 아니라 지인들에게 쓸 때에도

할말은 많으나 다 담을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복잡한 감정을 시를 통해 전했다. 

시를 잘 모르면 서정성 가득한 노래 가사라도 적어 보냈는데

그것 또한 나름대로 애틋했다.

비즈니스를 제외하고 작문이란 행위가 일반적이지 않게 된 

지금 세상은 시가 차지할 공간을 찾기란 참 어렵다.

 

그녀의 시가 많이 첨부될 것 같다. 

타임워프를 한다면

편지를 애용하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짧은 삶의 감상문같은 시들로 

수취인에게 감정을 잘 전달할 것 같다. 

내 상태가 이렇다고. 

 

나를 위로해줘.

 

 

이 책을 고르게 한 건, 

책머리에 시인이 남긴 한 문장이었다.

 

"미치광이와 눈먼 자들의 노래를 들으며

어딘지 모르는 채로 가고 있다"

 

허세인지 허상인지 잘 모르겠으나

미치도록 좋은 문장이었다.

어딘지 모르는 채로 끝까지 끌려가고 말았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가 떠올랐고

방랑자가 되었다. 

영화 '무사'나 'Mad Max'가 장면이 펼쳐졌고,

또 사막을 걷는 어린 왕자가 되었다. 

그녀의 시와 함께 지구별에 사는 우리들은

절대 고독에 잠식되어 있다.

 

 

Le Rayon vert- 에릭 로메르를 위하여

 

 

어떻게 저 많은 별들 가운데

어떻게 저 많은 사람들 가운데

눈이 내리고 수영을 하던 밤

햇빛이 내리쬐고 여행 가방을 싸던 밤

시시각각 우리는 이렇게

질문도 없이 대답을 하지

이토록 가벼운 존재에 대하여

이토록 충만한 투명함에 대하여

...

이곳은 지구라는 별

네가 왔다

이토록 무한한 녹색 빛

이토록 정지된 푸른 시간

사계절 내내

 

-<Le Rayon vert- 에릭 로메르를 위하여> 부분 발췌

 

실은 모두가 버려지고 있다

너무 먼 곳에 버려져 잊었을 뿐이다

이 행성이 우주의 거대한 쓰레기장이란 걸

우리는 모른다

기억하지 못한다

버린 자들이 가끔 떠올리는

악몽이라는 이름의 푸른 별을

 

-<구빈원> 부분 발췌

 

사막, 밤, 지구라는 별, 우주

소외된 말들의 유영속에서

죽은듯한 침묵속에 산다.

 

수많은 인종과 언어가 가득한 대도시의 삶

모르는 곳으로 떠밀려가고 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기둥을 향해 무작정 기어오르는

<꽃들에게 희망을>의 애벌레들마냥

그 세계관에서 한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누군가를 원망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위로가 절대적으로 그리운 날들

그녀의 시가 곁에 섰다. 

 

공허함을 채웠다.

고마웠다. 

 

 

밤 기차

 

기차에 무언가 두고 내렸다 잠깐 잠이 들었고 일어나 보니 옆 좌석에 누군가 타고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 깨 보니 다른 누군가 타고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 깼을 때 또 다른 누군가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기차는 멈춰 있었다 나는 서둘러 가방과 우산을 챙겼다 기차에서 내리자 겨울밤의 냉기가 밀려왔다 사람들을 뒤따라 계단을 오르고 개찰구를 빠져나왔다 처음 보는 역이었다 처음 보는 지명이었다 모두 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쌓인 눈 위로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차에 무언가 두고 내렸다는 걸 깨달았을 때 뒤돌아보니 기차는 사라지고 없었다 사람들에게 떠밀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누군가 날 깨워주길 바랐다

 

-<밤 기차> 전문

 

 

강성은

2005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구두를 신고 잠이 들었다』『단지 조금 이상한』『Lo-fi』

『별일 없습니다 이따금 눈이 내리고요』,

장편소설 『나의 잠과는 무관하게』 등이 있다.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 소개 출처: 알라딘 북스

 

***

 

강성은의 시집 <단지 조금 이상한>을 읽을 때 어울리는 노래는 무엇일까 종일 고민하다가

이 노래를 떠올렸다. 

이 보다 더 좋은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ikZgBhSMSUM&list=RDikZgBhSMSUM&start_radio=1

Sometimes It Snows in April - Price. Music from the motion picture "Under the Cherry M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