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rs to 2 Wks - (P)oetry 시

P011. 고요에 기대어 - 김초혜

TMLove 2025. 8. 30. 19:22

 

 

떨어져 누운 꽃은
나무의 꽃을 보고
나무의 꽃은
떨어져 누운 꽃을 본다
그대는 내가 되어라
나는 그대가 되리

-[동백꽃 그리움] 전문

 

 

 

 

 

8월에 추가로 2006년 10월 초판본 <고요에 기대어>를 읽었다. 저자인 김초혜 시인은 조정래 소설가의 아내로도 알려져 있다. 두 분 모두 유명하셔서, 누구의 아내, 누구의 남편이든 어떻게 불려도 이상하지 않다. 

 

90년대 초 그녀의 <사랑굿>을 접하고 난 지 어언 30여 년이 지났다. 1943년 생. 현재 나이 81세로 이 책이 출간된 당시는 막 60세를 넘기신 때였을 것이다. 8-90년대 연애편지에 애용되었던 사랑스러운 시들을 썼던 시인의 글은 어느샌가 세월의 향기가 배여 있다. 

 

사실, 그녀의 시는 한 번도 필사해 보지 않았다. 유년 시절엔 여성 시인들의 시는 나에게 맞지 않는 옷 같았다. 남성을 기준으로 한다기보다, 내가 공감하지 못해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너무 어렸었다. 이성에 무지했다.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았고,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사랑을 몰라서 그랬을 수 있겠다. 정말이지, 나도 그때의 나를 잘 모르겠다. 지금도 별반 차이 없는 성격이지만 이젠 그녀들의 시가 좋다. 

 

할 일도 잊고서
온종일 
바다만 보았다
그대 마음속 생각을
그대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
[서귀포에서] 전문

 

 

김초혜 시인의 시는 직관적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아픈 시대상의 배경이나 깊은 문학적 소양을 바라지 않는다. 문법 파괴도, 미사여구도, 의미심장한 비장미도 드러내지 않는다. 난해하지도, 밋밋하지도 않다. 시라면 으레 떠올리는 문장 반복이나 은유들은 초등학생이라도 쉽게 읽히도록 썼다. 그러나 문장 하나도 가볍게 여기지 못할 책 제목처럼 음미하게 된다. 

 

길을 떠나기 전에 
묻고 싶었으나
길을 떠난 후였고
길을 걸을 때
묻고 싶었으나
숨이 가빴다
지금
길이 없기에
길을 잃지 않는다

-[먼 길> 전문

 

 

책을 넘기다 보니 예전에 읽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초독이 최소 십여 년 전일 것 같은데, 더듬어 봐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앞으로 책에 메모를 적어야겠다. 매몰된 기억이 너무 많다. 바둥바둥 살아왔지만 책은 놓지 않았고, 버리지 않았다는 것. 그 기억만으로도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다시

사랑에 빠져있던 시와

사랑이 빠져 있는 시를 만났다. 

그러나 그리움과 슬픔도 사랑의 연장선상

사랑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사랑의 시들이 가득하다.

 

또 십년이 지나 다시 읽으면

공감하고 있다고 믿었던 그들이 

또다른 형태의 공감대로  

마주할 수도 있겠다.

다 이해할 수 없다고 믿었던 것들이

여전히 이해를 못한 범주에서

몸부림칠 수 있겠고.

그럼에도

시에 비추어보는 내 모습이

그때에도 좋기를 바란다.

 

 

길을 해메다가
문득 서보니
그대 집 앞이었네
오늘 같은 밤이 
이 생에서 올 줄이야

한바탕 꿈인들 어떠랴
꿈꾼 것을 
다시 꿈꾸며

세월에 지워진 얼굴을 
떠올려본다

-[꿈] 전문

 

 

첨언하자면 이 시를 접했을 때 며칠 전 일이 떠올랐다. 점심을 하러 한 동네를 지나가는데 몇 년 전 세상을 떠났던 친우의 옛집을 지나갔다. 그가 이곳에서 살고 있었다. 누군가가 지금 살고 있을 텐데 내겐 아무도 살지 않는 집처럼 보였고 그는 그저 멀리 이사 가 버린 것 같았다. 이러저런 사념들이 이어지길 반복했다. 이 세상에 그와 함께한 시간들이 꿈같았고 앞으로 이 골목을 지나갈 일은 없을거라 여겼는데 그를 떠올려 본 것으로 지난 세월이 그려졌다. 그 세월에 지워진 얼굴을. 시처럼 다시 떠올리게 했다. 

 

 

김초혜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를 졸업했다. 196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떠돌이 별』, 『사랑굿1』, 『어머니』, 『사랑굿 2』, 『섬』, 『사랑굿 3』, 『세상살이』, 『그리운 집』, 『고요에 기대어』, 『사람이 그리워서』, 『멀고 먼 길』, 『만나러 가는 길』. 시선집 『떠도는 새』, 『빈 배로 가는 길』, 『편지』. 편지글 『행복이』, 『사람이』를 간행했다. 한국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공초문학상, 서정시학상 등을 수상했다.

-저자소개출처: 알라딘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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