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세풀베다의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읽었다. 출판사 열린책들에서 출간한 2010년 세계문학판 2쇄였다.
밀림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이 소리야말로
진정 살아 있는 자연의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거야.
노인은 '낮에는 인간과 밀림이 별개로 존재하지만, 밤에는 인간이 곧 밀림이다'라는
수아르 족 인디오의 말을 떠올리며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122 p

작년 새해에 결심한 독서목표는 방만했다. 그간 종이책을 예전만큼은 읽지 않는 것 같아, 목표를 상향 조정했었다. 일년에 160권 정도를 읽는 것이었는데, 종이책 50권, 오디오북 50권, 세계문학/고전 10권, 논픽션 10권, 시집 12권, 영문책 12권, 그래픽 노블 12권 읽기였다. 추가로 향후 5년안에 집에 모셔둔 전집 중 4-50권을 읽기로 설정했다. 일주일에 3-4권만 읽으면 가능한 수치였다. 통계를 내보니, 일년에 읽은 권수는 44권이었다. 종이책으로 소설은 8권을, 오디오북은 14권, 시집과 그래픽 노블은 각각 16권을 읽었는데, 결과론적으로 목적한 바의 반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세계문학이나 고전은 단 한권도 읽지 않았다. 작년 결과를 반성하며, 심기일전해서 올해 다시 한번 더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에 한권 분량을 끝냈으니 두배만 더 하자는 생각이다.
첫권을 작년엔 한권도 읽지 않은 세계문학에서 골랐다.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이름은 낯설었다. 사실 중남미의 소설을 잘 접해보지 않았다. 중남미 작가들을 차별하는 것은 아니다. 나또한 누구나 알고 있는 파울로 코엘료, 주제 사라마구, 조제 마우로 지 바스콘셀루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을 좋아하고 그들의 작품들을 사랑한다.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중남미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이름들이 익숙치 않는 탓이다. 너무 길고 같거나 비슷한 경우가 많아서 혼란스럽다. 그럼에도 내 책장에는 중남미 작가들의 책들이 많이 꽂혀 있다. 신기하다. 들어본 적 없는 작가의 이름과 제목이 많다. 도대체 어떤 경로와 동기로 저들의 책을 구입했을까 싶다. 연애소설 읽는 노인은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전집의 23번째 책이다. 세계문학전집에 들어갈 만큼 추천되는 소설이란 믿음으로 몇권의 세계문학소설들을 함께 구입했을 것이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시리즈는 오늘 현재 294편까지 발행되어 있다. 꾸준히 전집시리즈를 출판해주는 황금가지, 민음사, 열린책들과 같은 출판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전문가들이 엄선해 주는 책들이니 선택의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다.
노인은 암살쾡이에게 당한 희생자들을 보았지만 그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것은 수아르 족 인디오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터득할 수 있었던 죽음에 대한 그들의 시각일 수도 있었다.
-143p
이 작품은 순수문학임에도 펄프픽션을 읽는 것 같은 흥미진진함을 유발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왔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촛점을 맞춘 것이 아닌 캐릭터를 형성하는 조미료같았다. 전반적인 내용은 이렇다.
에콰도르의 강가에 위치한 마을 엘 이딜리오에 한 금발의 시체가 떠내려왔다. 백인 밀렵꾼이었다. 사인은 그들에게 새끼들과 수놈을 잃은 암살쾡이 (ocelot 아메리카의 고양이과 동물) 에 보복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그 보복은 멈추지 않았다. 마을의 탐욕스런 유일한 공무원인 뚱보 읍장 루비초는 마을에서 가장 현명하고 밀림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노인 안토니오 호세 볼리바르를 탐색대에 끌어들인다. 수십년 전 아내가 죽은 뒤 밀림을 떠나 마을에 정착한 노인 안토니오는 주로 연애소설을 읽으며 여생을 보내고 있었다. 인간과 자연의 갈등에서 벗어나 살고 싶어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우기가 시작된 밀림으로 향한다. 노인은 예전 일들을 회상하며 암살쾡이를 추적한다. 겁많고 멋대로인 읍장에 의해 여러번 난관에 빠진 일행들은 결국 읍장의 의견을 따라 노인을 밀림에 남겨두고 마을로 돌아간다. 노인은 홀로 암살쾡이를 추적하다가 일대일로 마주하게 된다.
이런, 내가 겁을 먹은 것인가.
노인은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숨기라는 수아르 족의 말을 떠올리며 가스등을 끈 뒤 가슴에 엽총을 얹은 체 배낭에 몸을 기댔다. 그리고 그를 붙잡고 있는 상념들이 마치 강바닥에 가라앉는 조약돌처럼 스스로 침잠할 수 있도록 어둠속에 자신을 내맡겼다.
-145p
환경운동가였던 작가는 파괴되는 밀림과 무분별한 밀렵에 대한 비난과 우려를 작품속에 잘 담아냈다. 노인 안토니오는 마치 나이가 든 람보같기도 했다. 추적을 하며 추리를 할때면 셜록홈즈 같기도 했다. 후반에 들어서 살퀭이와 일대일로 맞서 싸우는 마지막 장면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작품의 노인을 연상시켰다. 심지어 카누에서 이어지는 그 고독한 독백들은 진화된 노인과 바다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속도감있게 진행되었다.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호칭마저 잘 정리했다. 이름이 있음에도 대부분 노인, 읍장, 치과의사, 아내 식으로 지칭하여 작품에 몰입하기 용이하게 했다. 그외의 등장인물들은 백인들 (탐험가, 수렵가), 마을 사람들, 수아르 족 인디오 등으로 정리 가능했다. 연극 무대에 올리기도 좋을 설정이다. 올해 첫번째 책으로 읽었다는 것이 감사했다. 스토리 진행이 지루할 틈이 없었다. 기회가 된다면, 영화로도 개봉되었다고 하는데, 영화도 꼭 보고 싶다.
그리고 루이스 세풀베다는 2020년 코비드로 인해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애도하며, 그의 다른 자품들도 번역이 되었다면 꼭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
저자: 루이스 세풀베다 (Luis Sepúlveda)
1949년 칠레에서 태어난 작가 세풀베다는 소설을 비롯한 여러 장르의 작품들을 발표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쳐 왔다. 특히 환경과 소수 민족 등에 관한 모두의 각성을 촉구하는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이 많다. 수년간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여행하며 글을 쓰고 환경 운동을 펼치다가 파리를 거쳐 독일로 이주했으며, 1997년 스페인 북부에 정착해 남은 생을 이곳에서 가족과 함께 보냈다. 세풀베다는 1989년 『연애 소설 읽는 노인』으로 티그레 후안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저자소개 출처: 알라딘 북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880543
연애 소설 읽는 노인 | 열린책들 세계문학 23 | 루이스 세풀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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