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ight's Meditatio(N) 명상

N014. 우리는 사랑을 버렸을까

TMLove 2022. 2. 27. 01:20
사람이란 존재는 항상 비교하기를 좋아해서 사랑에도 어떤 이는 플라토닉과 에로스로 나누고, 또는 아가페와 에로스로도 나누고, 또 어떤 이는 사디즘과 마조히즘으로, 또는 불 같은 사랑과 가랑비처럼 젖는 사랑으로 나누고, 또 어떤 이는 로맨스와 불륜으로 나누고, 또는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으로 나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불교는 자비의 종교라고 같은 말인데 종교적 관점으로 나누는 이들도 보았다. 아가페와 에로스. 사랑과 자비. 로맨스와 불륜.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 정의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그 중에 최고를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데, 천편일률적으로, 첫사랑과 마지막 사랑의 비교에선 첫사랑을 말하며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첨언한다. 그러나 남자들은 배우자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비스무리한 말을 던지고, 여자들은 마지막 사랑이 자식이라고 애매모호한 말은 남긴다.

 

 

 요한은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에베소 교인들에게 책망할 것을 집어,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말한다. 그리고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하고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나무란다. 오래 참고, 모든 것을 견디며, 게으르지 아니한 사랑에게, 환난과 궁핍속에 지켜낸 사랑에게 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버렸다거나 지웠다보다 연인들이 주장하는 변했다라는 말일 것이다. 잘해주는데 최선을 다했다고 보았는데 처음에는 안그랬다고, 너도 변했다고 듣는다. 당신이 기억하는 첫사랑이 무엇이고 기억하는 처음 사랑이 무엇이기에. 불같이 뜨겁던, 눈에 무엇이 씌었던, 폭풍같던 처음을 그리워하는 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등을 두드리며 더 하라고 하는 상사의 말처럼 최악이다.
 
그러다 얼마전 극진 가라데 창시자 고 최영의의 아들인 최광범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학창시절 대학입학시험에 떨어졌지만 의대에 가고 싶어 아버지에게 재수하겠다고 전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더니 얼굴이 변하셨다는 아버지.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겠다는데 뭐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아들에게 최영의가 말하기를, ‘왜 그렇게 말하지?  꼭 한다고 얘기해. 목숨을 건다고 말해. 네가 정말 원하면 그렇게 얘기하는 거야’ 말했다고 한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은 한발 빼는 거라고. 최선을 다했는데 안됐습니다, 이런 말은 인생에 필요없다고. 최영의의 말처럼 요한은 마음가짐의 자세를 얘기하는 것 같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고.
 
세상 풍파에 끊임없이 흔들리고. 보수와 진보, 극우와 좌익의 색깔론에 편향되어 질타받기 쉬운 시기에. 지역차별과 인종차별과 팬데믹의 공포와 아픔에 사는 시기에. 그래서 생존을 걱정하는 시기에. 그럼에도 타락한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아 전체가 손가락질 받는 시기에. 비껴가지 않고 성찰의 시간은 다시 찾아온다. 갈 길은 멀지만 가야할 길에 관해서. 무뎌 진 열정과 진심에 관해서.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계시록 2장 3-4절

 

-April, 15th,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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