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ight's Meditatio(N) 명상

N019. 족보와 뿌리

TMLove 2022. 3. 24. 09:42
성경을 읽다보면 읽기 힘들고 지루한 장들이 있는데, 특히 인명록과 같은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이다.
 
마태복음 1장은 아브라함에서 다윗으로, 다윗에서 예수까지 인물순으로 내려오는 족보를 설명한 장이다. 누가복음 3장은 그 족보를 역순으로 예수로 시작해서 다윗으로, 다윗에서 아브라함으로, 아브라함에서 아담, 그 위의 하나님까지 이어지게 기술해 놓고 있다. 믿음의 조상과 인류의 조상과 하나님까지 아우르는 저자의 의도는 명명백백 예수 그리스도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가르키고  강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 두개의 족보를 비교하니 이름들에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 1장을 역순으로 기술하니 요셉, 그 위는 야곱, 그 위는 맛단,  그 위는 엘르아살, 그 위는 엘리옷, 그 위는 아킴, 그 위는 사독... 요셉 이외에는 상위 여섯의 인명이 다 다르다. 구두로 전해졌기에, 다른 것일까. 발음의 차이나 번역의 오류인건가. 족보는 정말 중요한데 이런 오차를 남겨놓았을까. 
 
친할아버지가  황해도에서 6.25 전쟁 당시 월남했을 때 족보를 들고 오지 못했다. 전쟁 통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족보를 챙기지 못했다. 남하해서 살던 지역에 북에서 이주한 정씨들이 많이 모여 살았었는데, 그들역시 대부분 족보를 들고 오지 못했다. 하여 다수의 연장자들이 모여 기억을 더듬어 다시 족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할아버지 역시 그들과 같은 본관으로 여겨 그들의 족보안에 포함시키고 기재했다는 것이다.  후에 그 사실을 알게된 조부께서는 원래의 본관인 연일을 찾기위해 동분서주 하셨으나 이루지 못하셨다. 관련 공무원들에 따르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와서 증명해주어야 교정이 가능하다고 했다. 증빙서류 없이 구두로 증명해서 교정해준다는 것도, 고조할아버지를 모시고 오라는 것도, 둘 다 현재로선 이해하기 어려운 시대상이다.
결론적으로 본관을 잃은 우리 집안의 절망은 대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조부께서 돌아가신 뒤, 파와 몇대 손인지를 기억하는 이가 없다. 요즘 들어 의아한 것은 미국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정씨들의 본관은 연일이라고 말한다. 진짜일까? 의문이 먼저 든다. 전쟁 통에서, 북으로부터 피난 속에서, 족보를 어떻게 보관하셨나요. 그대들의 족보를 보고 싶다. 실재한다면, 내 잃어버린 뿌리를 알아보고 싶다... 
이제는 성과 민족보다 돈과 외모를 보는 시대에 살고 있고, 이런들 저런들 사는데 아무런 지장도 없지만, 불쑥불쑥 생각나 괴롭힌다. 지키기는 어렵고, 잃기는 쉬운 뿌리. 미국에서 태어났다고 벌써부터 자기는 미국인이라고 쫑알쫑알 얘기하며 한국어를 기피하려는 우리 아이를 보면, 더욱 역사와 민족 의식의 교육에 신경쓰이게 된다. 그래서 마태와 누가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그 수많은 전쟁과 이주와 노예생활 속에, 족보를 어떻게 지켜왔을까, 언어를 문화를 신앙을 어떻게 전달해 왔을까 등에 궁금증이 더해졌다. 목숨을 항상 걸어야 했을 그 긴 시간들에 대한 답을.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이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 그 위는 멜기요. 그 위는 얀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맛다디아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훔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누가복음 3장 23절-25절
-May 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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