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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009. 승부 - 파트리크 쥐스킨트

TMLove 2025. 12. 3. 13:10

 

파트리크 쥐스킨트<승부>를 읽었다.

열린책들에서 출판한 2020년  4월 초판 1쇄본이다.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에요?  

예전엔 이와 같은 질문을 들었을 때가 많았다. 독서가 일상이었던 시절이었다. 나는 유럽 작가 중에서란 전제를 말한 뒤,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얘기하곤 했었다. 카프카, 카뮈, 헤르만 헤세 등 누구나 아는 작가들은 식상하니까. 그 당시엔 쥐스킨트는 유명작가는 아니었다. <좀머씨 이야기>가 인기를 얻으며 조금씩 알려지던 시기였다. <향수>가 영화화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은둔의 대명사인데다가 다작을 하는 편인 아닌 작가의 작품 이야기를 나누면 나마저 신비주의자가 되는 것 같았다. 저서 여덟권을 모두 소장하고 있었고, 모든 작품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 뒤로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의 신간은 여전히 출간되지 않았다.

 

며칠전 인터넷서점에서 그의 이름을 입력했더니, 전에 보지 못했던 신간이 나와 있었다. <승부>. 들어보지 못한 제목이었다. 게다가 실로 꿰어 만드는 전통적인 사철방식의 제본으로 미국에서 주로 볼 수 있었던 전통의 캔버스 하드커버 책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주문을 했다. 

 

https://youtu.be/zvkCDtBRS8I

열린책들 - 북트레일러

 

 

<승부>는 짧은 단편소설이었다. 중편도 아닌 단편소설을 달랑 단권으로, 그것도 반은 그림으로 채워 출간을 했다. 왠만한 애독자가 아니었다면 욕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전작인 <좀머씨 이야기>, <비둘기>, <깊이에의 강요>도 단편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분량이긴 했지만 그들은 적어도 100페이지는 넘겼다. <승부>는 그  반절의 양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얼마나 더 글이 짧아질 지 승부를 하자는 것인가?

 

책의 내용은 프랑스 파리의 한 정자에서 노년의 고수와 젊은 도전자가 체스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이다. 동네에서 무패를 자랑하던 노고수에게 못보던 한 젊은이가 도전한다. 도전자는 과묵하고 인상깊게 대결을 펼친다. 무모하게 보일지 모르는 과감한 행보, 그 패기와 열정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고 노고수는 긴장하게 된다. 체스판의 말을 계속 잃어감에도 자신들이 모르는 숨겨진 수를 기대하며 도전자의 승리를 확신한다. 해질무렵 도전자는 패배를 인정하지만 무례하게 자신의 킹을 쓰러뜨리고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사람들은 그 젊은 도전자가 초짜였음을 깨닫고, 멋적게 자리를 벗어난다.  

 

읽다 보니 어디서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고보니 <승부>는 소장하고 있는 그의 다른 소설 <깊이에의 강요> 소설집에 포함되었던 네편의 단편 중 하나였다. 달랑 12페이지로 실렸던 초단편 소설을 삽화를 잔득 넣어 무려 72페이지의 단권으로 재발행하는 마법을 부렸다. 독자의 분노를 유발하는 것인 지, 기만하는 것인지, 알아챌 수 있을 지 시험하는 것인지. 아니면 독자가 느낄 허무를 가지고 <승부>란 소설의 내용을  반추해 주는 것인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게 했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 좋아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장자크 상페의 삽화가 책의 반 이상을 차지하니 분명 소장 가치에 문제가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착잡한 심정이 피어올랐다. 난 오랜 기간 절필해 왔던 작가의 신간을 원했지, 표지가 바뀐 책을 원한 건 아니었다. 

 

분노는 없었다. 허탈감에 빠졌을 뿐. 그래도, 장자크 상페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나아졌다. 가만 보니 눈에 띄지 않았던 소설이 삽화와 함께 생동감을 얻는 것 같았다. 이거, 볼수록 매력적인데? 리뉴얼되어 재출간된 그의 다른 소설들도 이렇게 많은 삽화가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점점 궁금해졌다. 그런 것이라면. 전부 재구입하고 싶다.

아...이것이 바로 덕질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Patrick Suskind)

전 세계적인 성공에도 아랑곳없이 모든 문학상 수상과 인터뷰를 거절하고 사진 찍히는 일조차 피하는 기이한 은둔자이자 언어의 연금술사. 소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1949년 뮌헨에서 태어나 암바흐에서 성장했고 뮌헨 대학과 엑상프로방스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편의 단편을 썼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한 예술가의 고뇌를 그린 모노드라마『콘트라바스』가 <희곡이자 문학 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으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평생을 죽음 앞에서 도망치는 기묘한 인물을 그려 낸『좀머 씨 이야기』와 전 세계적으로 2천만 부의 판매 부수를 기록하며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향수』등으로 독일을 대표하는 작가로 각인되었다. 

-작가 소개 출처: 알라딘 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