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식 작가의 <굿바이 동물원>을 읽었다. 사실 정정하자면, 들었다.

팬데믹의 영향으로 재택 근무가 일상화되었다. 제일 큰 변화는 사라진 출퇴근 시간이다. 낭비되는 시간이 없어졌다고 좋아했는데, 오히려 업무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출퇴근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활용되던 독서 시간도 없어졌다. 방 안에 종일 박혀 업무를 마치고 나와서 저녁인지 야참인지 모를 식사를 끝내면 바로 녹초. 그 상태로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 식사 후 소파에 앉아 습관처럼 틀게 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도 이유라면 이유였다. 이런 상황에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윌라' 월정액제 무제한 오디오북 앱을 알게 되었다. 초기엔 한 두시간에 끝낼 수 있는 에세이나 두세시간 분량 소설을 열 몇시간씩 감정을 담아 천천히 읽어주는 속도는 적응이 쉽진 않았다. 몇 주의 적응 기간이 지나자 익숙해졌다. 일인 다역을 멋지게 열연하는 성우들의 연기에도 매혹되었다. ‘고릿적 라디오 드라마가 TV시대에도 왜 인기가 있었던 건가’에 대한 답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소설들 중에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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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참 그렇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나는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이런 문제들을 등한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225 p
중소기업을 다디던 김영수 과장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 된 뒤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동네의 부업 브로커 돼지 엄마가 소개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그 일들은 대략 마늘 까기, 인형 눈 붙이기, 종이학 접기….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리고, 인형 눈을 본드로 붙이다가 본드 중독과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환각과 무력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른 일거리를 알아보던 중, 취직이 되면 잘릴 일이 없다는, 세렝게티 동물원 일자리를 소개 받아 취직한다. 세렝게티에서 마운틴 고릴라 담당을 맡게 되는데, 고릴라들을 관리하는 직책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고릴라 탈을 쓰고 실제 고릴라처럼 생활하는 일이었다. 세렝게티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인간들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내지만 관람객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영수는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던져주는 바나나를 까먹고 12미터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철제 구조물에 기어올라 가슴을 두들기며 포효하는 고릴라 업무에 익숙해져 간다.
간밤에 많이 생각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낮에 봤던 고릴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먹고 산다는 게 뭘까? 인생에 대한 회의가 밀려와 아내 몰래 몸부림치기도 했다. 고릴라가 아니면 먹고살 수 없는 걸까? 떼굴떼굴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진 느낌이었다. 내일 나가지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고릴라면 어때, 돈만 잘 벌면 되지,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내가 차라리 마늘을 깐다, 넌 자존심도 없냐, 너덜너덜 걸레가 될 때까지 자존심을 괴롭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도 하는 건데 뭘,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이렇게 자기를 합리화해보기도 했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감고 있었다. 한두 시간이나 잤을까?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런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출근길에 올랐다. – 106 p
그러던 어느날, 세렝게티의 직원이었다던 한 여행사 영업사원이 찾아와서 여행 상품을 팔기 시작한다. 추천 상품이 아프리카로 떠나 진짜 동물들과 사는 것이었다. 그 말에 마운틴 고릴라 중 대장이었던 만딩고가 넘어간다. 남파 간첩이었으나 북측으로 부터 버려졌던 만딩고는, 평생 쫓기는 현실과 돈 문제로부터 벗어나고자 아프리카 이주를 결정한다. 만딩고는 아프리카에서 동물들과 어울려 생활하면서 핸드폰 약정이 끊길 때까지 세렝게티 동료들에게 매일 통화하였는데 월세, 전세, 관리비, 세금 등의 돈 걱정 없는 아프리카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찬사를 늘어놓는다. 생활고로 힘들어하던 동료들은 그의 말에 공감해서 한국 생활을 접고 아프리카로 한두명씩 떠나는데, 급기야 세렝게티 동물 직원들이 대폭 줄어드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그 와중에 동네 마트에서 캐셔 일을 하던 영수의 아내는 부업을 소개받아 마늘까기, 인형 눈 붙이기 등을 하기 시작한다.
“마늘이 맵네.”아내는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매운 건 마늘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마늘 때문이 아니다. 사는 게 맵다. 매우니까 눈물이 난다. 한때는 나도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 안다. 마늘보다 사는 게 백배쯤 맵다는 걸. -159 p
블랙 코미디 소설 <굿바이 동물원>의 웃픈 현실 풍자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던 날, 남들의 눈을 피해 울고 싶던 영수가 화장실을 찾는다. 하지만 화장실에 비어 있는 칸이 없었다. 구조조정을 당한 동료 가장들이 선점해선 울고 있었던 것이다. 울고 싶은데 울 곳이 없었다. 울기 위해서 화장실을 찾는 것도 경쟁이었고 영수는 우는 것마저 경쟁에서 밀렸다. 세렝게티 동물원에 취직하기 위해 30대 중반 나이에 다시 체력장 준비로 사력을 다하던 과정이나, 같이 해고되었던 동료가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보험 사기를 치려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도 웃긴데 웃지 못했고, 절실해 보여 애잔했다.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소설 속 영수 부부의 현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나아질 것도 없어 보이지만, 매일매일 꿋꿋이 살아간다. 서로 사랑하고 응원하며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하고 절망에 가까운 삶에도 희망이 살아있다. 나아갈 수 있다. 용기를 쥐어준다.
근 몇 십년 사이, 최악의 해를 보낸 현재를 생각해 본다. 낮은 신뢰도의 급 제조된 백신과 심사기간이 대폭 줄어든 치료제가 2021년을 예전 생활로 완전히 돌려줄 수 있을지 불안감이 팽배하다. 예전 생활로 돌아가도 겪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고통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을 것도 안다. 팬데믹으로 인해 과속화된 인공지능, 머신러닝, 로봇 등의 4차산업 투자가 일자리면에서는 어두운 미래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서로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살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은 고릴라 흉내를 내며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를 하루하루를 살아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소망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올 내일도 해피엔딩이라 믿는다.
-Jan, 2021. Published @ Touch Story Lab.
-2025년에 쓰는 첨언.
2020년 이 책을 처음 읽고 에세이를 썼을 때는 팬데믹으로 인해 모든 것이 엉망이었던 때였다. 백신과 치료제가 충분히 제공되지만 값이 올라 백신을 잘 맞지 않게 되었다. 지금도 코비드에 걸린 사람들은 심심찮게 나오고 있지만 독감뉴스처럼 무뎌져 버렸다. 마스크는 일상이 되었고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었다. 발생된 햇수로 6년이 지났는데, 예전 생활은 되찾았다. 일자리면에서는 어두운 미래가 현실이 되었고, 물가는 폭등했고, 경제전망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외식을 줄였고, 씀씀이를 낮췄다. <굿바이 동물원>은 표지가 바뀐채 개정판이 나왔다. 강태식 작가님은 그 뒤로 몇권의 책을 집필했으나 아직 읽어볼 기회가 없었다. 2025년에 윌라에서는 그의 책을 찾아볼 수 가 없다. 구독 서비스다 보니, 넷플릭스처럼 어느 기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시스템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윌라를 구독한지도 어언 6년째다. 현재까지 2174시간을 들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저 시간의 기록이 전부 일반소설이나 인문학 쪽이었으면 좋으련만, 윌라에서 웹소설과 장르소설을 늘이는 바람에, 일반소설의 청취가 대폭 줄었다. 선택은 내 몫이었으니 원망의 화살을 돌리는 것 조차 우습다.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터치 스토리 랩의 월간지는 폐간되었다. 슬펐다.

강태식
2012년 《굿바이 동물원》으로 제17회 한겨레문학상을, 2018년 《리의 별》로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영원히 빌리의 것》이 있다.
수상 : 2018년 황산벌청년문학상, 2012년 한겨레문학상
저자 소개 출처: 알라딘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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