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rs to 2 Wks - (P)oetry 시

P016.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 변윤제

TMLove 2025. 12. 25. 12:21

 

 

...
우리는 벤치에 주저앉아 끝없이 말을 했지. 서로 벗어날 수 없는 기억에 대해.
것들.
어쩌면 기억이라는 공원이 있어, 거기 도착하려고 하는 두 산책자 처럼
...

-[것들] 부분 발췌

 

 

벌써 12월이 왔다. 변윤제 시인의 시집,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를 읽었다. 2024년 4월 1판 4쇄본이었다. 

 

 

 

2021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16년만에 등단했다는 젊은 시인 변윤제의 첫번째 시집이었다. 주홍색 바탕의 사랑스러운 표제. 그 때문이었다. 이 시집에 더 어울릴 달은 이번 달 빼고는 없었다. 이번에 읽지 않으면 내년 연말까지 책장에 잠들고 있을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말하면 변윤제 시인의 시는 나와 맞지 않았다. 문맥이나 내용을 이해하기 버거우면 나의 뇌는 과부하에 걸린다. 최하연 시인의 피아노를 접했을 때와 같은 경우다. 주석이 없으면 공감하지 못할 시의 향연. 시에 이런 스타일이나 장르가 있을 지 몰라 달리 뭐라 표현하기 어렵다. 특히 시집의 2부에 등장하는 알파카 관련된 시들은 도대체 해석불가, 공감불가, 이해불가에 빠졌다. 알파카가 낙타과 라마의 종류라고 하는데, 시의 소재로 왜 계속 등장하는지 알 수 없다. 조심스러울 말이지만, 이 분은 혹시 약이나 우울에 빠져 정신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던 건 아닐까. 아니면 가까운 지인이 그런 경험이 있어, 특별한 시각으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나서 겉날개 표지에 씌인 시인의 말을 다시 펼치니, 첫문구가 '이제 세상이 없는 그 병원을 생각하면 수많은 나무가 떠오른다....' 정신병원, 의사, 이런 단어들이 시에서 등장하는 것을 보면, 망상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혀를 질끈 깨물면 햇살의 방향이 달라지고
좋아
좋구나, 라고 발음하는 일만으로 기분에 부력이 돈다
정신병원에 갇혔던 스무 살 병상이 꼬리 치며 사라지는 뒷모습

-[기분의 중력과 부력].부분 발췌

 

 

정성스레 가꾼 붓에서 분뇨가 흘러내린다. 의사는 그것이 병이 아니라 했다. 오물을 칠해놓은 화폭에 자꾸 아름다운 사람이 시작되는데, 병실 바께 내가 쫓은 개들이 찾아와 발자국을 버려놓는데, 병은 그것이 아니라 한다.  ...
...
난 신보다 나를 잘 그리는 편이다. 의사는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고. 새빨간 병원 로비엔 순식간에 자화상이 걸린다. 모여든 사람들이 손뼉을 친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걸레는 처음 보았다고. 짝짝. 짝짝짝.

-[자화상]. 부분 발췌

 

 

그의 상상력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런데 단 하나 온전히 적어내려가고 싶은 시 한편을 찾지 못했다. 부분적으로 나누면 멋진 문장들이 많아 리스트업 하기도 어려운데 참 아이러니하다. 많은 자작시를 문단별로 잘라내어 무작위로 보관했다가 나중에 붙여넣기를 해서 시들을 탄생 시킨 것은 아닐까 의구심마저 든다. 현혹시키는 문장들에 빠졌다가, 그래서 결론이 뭐야? 뭘 원하는 거야? 혼란이 가중된다. 

 

시집 끝에 포함되어있는 문학평론가 최선교의 해설이 속시원하게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지금 이 단어는 내가 생각한 개념을 적절히 설명해주는 것인가? 또 이 목소리의 높낮이는 내가 느낀 슬픔을 알맞게 전달하는가? 여러 고심 끝에 선택한 단어, 문장, 어조 등이 무엇을 얼마나 정확하게 나타냈는지를 따져보면 열 번 중에 아홉 번은 형편이 없다. ...운명의 최종 목적지는 언제나 강박이다. 변윤제의 시집에서도 이런 종류의 강박이 군데군데 발견되곤 한다.하지만 무엇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할까?....이 부분에서 표현에 대한 다른 접근법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잘 모르겠다. 잠시간의 고민끝에 비슷한 결론을 내린다. 그의 시를 방식을, 판단하거나 이해하려는 것이 굳이 필요한가? 뇌는 잠시 멈춤에 이르렀다가 현타가 온다. 그림처럼 보고 잔상만을 품을 수 있게 하자.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것이지. 문장이나 문단이 모두 아름다울 수는 없다. 때로는 역할 수도 있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그렇게라도 기억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성공한 글 아닐까. 

 

...
'나의 위로는 꿈꾸는 사람이나 그래서 죽고 싶은 사람을 상대하느라 너무 지쳐버린 것 같아.
위로하는 나를, 아니 위로를 위로해줘. 누구를 보살피느라 위로 자신을 돌보지 못한 그 위로를.'
...
-[게스트 하우스에서의 한달]. 부분 발췌

 

 

...
찾아낼 것이니 
찾아갈 것이니

공원 벤치 위
몸의 가장 먼 곳부터 흘러내리고 있다
사라지고 있다
흩어지는 허연 눈바람을 맞다보면

사람을 만들 수가 없어
빚을 수도
헤아릴 수도
눈곱을 떼어줄 수도

함부로 손을 마주잡자고
결심할 수 없는
핼러윈의 옹색한 골목길에서
다시
...

-[중간]. 부분 발췌

 

 

-변윤제

1990년 성남에서 태어났다. 시와 다양한 이야기를 쓴다. 2021년 문학동네 신인상을 수상하며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고, 시집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등이 있다.

-작가 소개 출처: 알라딘 북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520101

 

저는 내년에도 사랑스러울 예정입니다 | 문학동네 시인선 205 | 변윤제

문학동네 시인선 205권. 변윤제 시인의 첫 시집. 2021년 문학동네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변윤제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음매 없이 아우르는 시의 확장성”과 “발랄한 상상력

www.aladin.co.kr

 

그리고 이 시집을 읽다보니, 프리다의 그림이 연상되었다. The White Stripes의 Seven Nation Army도 떠올랐다. 잘 어울려 보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0J2QdDbelmY

Seven Nation Army (Official Music Video) by The White Strip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