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rs to 2 Wks - (P)oetry 시

P019.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한강

TMLove 2026. 3. 11. 07:34

 

아프다가

담 밑에서
하얀 돌을 보았다.

오래 때가 묻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아직 다 둥글어지지 않은 돌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
...

-[조용한 날들] 부분 발췌

 

 

2026년 3월은 한강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었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에서 출간하는 438번째 시인선으로 2018년 1월, 무려 초판 19쇄본이었다. 심지어 그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 훨씬 이전이었다. 

 

 

 

구입한 뒤 읽지 않고, 책장에 시집을 꽂아 두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다. 왜 구입했는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계절이 몇 번 더 지나면 완전히 왜곡된 추억을 생성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한강'이란 이름은 사실 쉽게 잊혀질 수 없는 작명이다.  작가의 이름은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작인 [몽고반점]부터 들어 알고 있었는데, 아마 '서랍에 저녁을...'은  2016년 맨부커상으로 유명해진 [채식주의자]를 구입하면서 함께 집어들었으리라. 오랫동안 책장에 고이 모셔 두었던 이 시집을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을 듣고 생각했지만 유행을 타고 꺼내 들고 싶지 않아 책먼지 속에 방치해 놓았다. 그 뒤로도 한강 작가의 여러 책들을 원어뿐 아니라 영문판으로도 구입해 책장을 채웠지만 읽지 않고 꾹 참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열기가 가라앉은 어느 날, 마음이 동해 읽기로 했다. 뒷북이긴 했다.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렸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 [회복기의 노래] 전문

 

 

그녀의 시에선 기쁨이나 즐거움을 찾기 어렵다. 사랑과 같은 애정 표현이 없다. 세상의 굴곡을 다 경험한 뒤 생의 마지막 가까이에서 회한 어린 읊조림을 나누는 것 같다. 1970년 광주 태생인 그녀가 5·18 민주화운동의 시위 진압을 직접 보았을 거라 짐작한다. 어린 나이에  암울했던 시기를 경험했기에, 절망과 비탄을 품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 아픔을 들여다보기조차 두렵다. 위로를 받으려고 했는데, 위로를 해 주어야 할 입장이다. 한국 현대사 그늘에 무지한 나로서는 이해하는 척하는 것 같아 머뭇댄다. 손을 뻗다가 접지 못한 채 우두커니 같이 서 있는 것처럼,  어떻게든 위로해 주고 싶지만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거리 한가운데에서 얼굴을 가리고 울어보았지
믿을 수 없었어, 아직 눈물이 남아 있었다니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선 채 기다렸어, 그득 차오르기를

...

- [눈물이 찾아올 때 내 몸은 텅 빈 항아리가 되지]  부분 발췌

 

 

그녀는 신을 믿지 않는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되뇌인다.  여러 시에서 영혼, 피, 눈물의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신이 우리를 버렸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이 불신자는 원망과 슬픔이 가득하고 또한 초연하다. 시를 들여다보니, 말을 멈추지 않는다. 완전히 돌아서기 전 붙잡아 주기를 바라고 있듯이. 내 눈엔 환속한 수녀의 글 같다. 정갈하고 성스럽게 빛난다. 그렇지만 붙잡고 돌아서지 못하게 할 만한 이유를 꺼내놓지 못한다.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살려 달라고 부르짖는 영혼들이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음에도 침묵하는 신의 뜻을 현재로써 어떻게 이야기할 방법이 없다. 구약 시편 83편에도 이런 시가 있다. -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 인간의 입장에서 대책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듣고, 듣고, 듣기만 하고 있다. 

 

 

초 여름 천변
흔들리는 커다란 버드나무를 올려다보면서
그 영혼의 주파수에 맞출
내 영혼이 부서졌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에 대해서
...

그렇게 부서지고도
나는 살아 있고

살갗이 부드럽고
이가 희고
아직 머리털이 검고

차가운 타일 바닥에
무릎을 꿇고

믿지 않는 신을 생각할 때
살려줘, 란 말이 어슴푸레 빛난 이유

눈에서 흐른 끈끈한 건
어떻게 피가 아니라 물이었는지
...

-[피 흐르는 눈 3] - 부분 발췌

 

...
신도
인간도 믿지 않는
네 침묵을 기억하는 나는

-[거울 저편의 겨울 6] 부분 발췌

 

...
그러니까 내 말은, 

안녕.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심이야
 
    후회하고 있어.
   
    이제는 아무것도 믿고 있지 않아.
...

-[해부극장 2] 부분 발췌

 

...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 했는지
...

-[서시] 부분 발췌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녀의 글이 더 고파졌다. 대화가 더 필요해. 묵혀 둔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도 어서 읽어 봐야지. 그녀의 시는 여기까지. 어두움과 무거움을 감당하기 어려워 잠시 쉬어야겠어. 슬픔이 모두 전이될까 봐, 겁을 먹은 건지도. 

 

 

한강

1970년 겨울 광주에서 태어났다.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시 「서울의 겨울」 외 네 편을 발표하고 이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 장편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흰』 『작별하지 않는다』,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등을 출간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이상문학상, 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김유정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대산문학상, 인터내셔널 부커상, 말라파르테 문학상, 산클레멘테 문학상, 메디치 외국문학상, 에밀 기메 아시아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르웨이 ‘미래 도서관’ 프로젝트 참여 작가로 선정되었다. 2024년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소개 출처: 알라딘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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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 한강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권. 인간 삶의 고독과 비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진실과 본질적인 정서들을 특유의 단단하고 시정 어린 문체로 새겨온 한강의 첫 시집. 틈틈이 쓰고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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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에 어울리는 곡으로 이승환의 '내가 바라는 나'를 골랐다. 어떤 연관점은 없으나 분위기에 취해 이 노래를 듣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MDMliEB7_8

내가 바라는 나 - 이승환 4집 앨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