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Hrs to 2 Wks - (P)oetry 시

P021. 보조 영혼 - 김복희

TMLove 2026. 4. 14. 11:59
자니? 너,
이마도 코도 입술도 괴로워 보여
건드리고 싶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잖아
너를 나는, 오직 나를 위해, 너로 만들고 있지
즐길 수도 누릴 수도 싫어할 수도 없이
나는 네게서 나는 냄새
부풀어 오른 무덤
숨겨놓은 집을 돌려 받을 거야
대신 
벛나무의 연두색 잎사귀가 얼마나 많은 물을 필요로 하는지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너의 귀밑머리가 어떻게 휘날리는지
너에게 가르쳐줄 거야
...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 부분 발췌

 

 

문학과 지성 시인선 616번째, 김복희 시인의 [보조 영혼]을 읽었다. 2025년 5월 초판으로 작년에 발간된 따뜻한 신작이었다. 

 

 

 

2026년 4월, 추위와 더위가 오가며 무엇을 입을지, 어디에 나갈지 고민하게 만드는 날들. 유튜브로  [이가연의 매일 그대와]라는 생방송 라디오를 들으며 글을 쓴다. 오늘 방송은 김광석의 노래가 연이어 흘러나온다. 울적한 오늘을 위로하려고, DJ는 이렇게 선곡을 했나 보다.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등의 서글픔 가득한 노래들이 나를 위로하는 것인지, 더 침잠하게 하는지 잘 모르겠다. 괜스레 우울하다. 봄을 타는 것일까.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그럼에도 마음 편하게 누군가에게 - 자니? 하며 전화를 하고 이런저런 말들로 속을 털어놓는 일들은 없다. 밤늦게 전화를 거는 것은 이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문자마저도 잠이나 가족의 시간을 방해할까 봐 접는다. 늦은 밤 뜨거워지는 전화기를 충전해 가며 온종일 쌓여 힘들었던 것을 털어놓던 날들. 그날들이 축복의 시간이었음을 깨닫는다. 

 

...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을 피부로 머리칼로 느끼면
포기가 아니라 사랑을 알게 될까
예수나 부처의 제자 중에서도
이름 없는 말단의 말단의 말단의 제자 된 자라도 붙잡고
이 몸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냐고 묻고 싶다
...

-[사람의 딸] 부분 발췌

 

 

[보조 영혼]이란 제목이 눈에 띄었다. 내 영혼을 울려줄까 싶었다.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김복희 시인의 문장들은 눈에 쏙쏙 들어오지 않았다. 자연어로 쓰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자연어는 내가 귀 기울일 수 있는 언어와 감정. 공감할 수 있는 흔한 이야기들. 그리고 언제든 말과 말 사이에 공간이 있어 내가 파고들 여지를 남겨주는 것. 하지만 그녀는 자신 안에 쌓여 있는 이런저런 하소연들을 나와 소통하기 어려운 언어로 쏟아낸다. 시에 자주 언급되는 곤충이나 새, 요정들의 소통 언어 같았다. 그 코딩을 풀어내기 어려워 집중하려 해도 눈이 아프고 귀가 울리고 머리가 혼미하다. 그럼에도 당신의 세계만을 담은 소통에 화를 내지 않고 단절하지 않는 건 애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처럼 당신도 외롭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끝도 없이 외롭던 날, 초인종을 누른 여호와의 증인 방문객이 반가워 집에 들여앉히고 차 한 잔에 몇 시간 동안 대화를 했다던 지인의 지인 이야기기가 떠올랐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는 전도도 못하고, 어떨 결에 말이 고팠던 누군가의 인생사를 오후 내내 듣다가 돌아갔다고. 언어나 표현 방식이 나와 격이 맞지 않아, 전혀 이해를 못 해 주는 입장임에도 허락된다면 상대의 수다 속에 잠깐이라도 방문 목적을 꺼내고 싶었던 낯선 이가 된 것 같다. 

 

밟고 있는 땅이
필요했어
붓꽃에 뿌리가 있다는 증거가
삶에서 떠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
너 모르게
네 용기를
돕는 푹신하고
그늘 없는 땅
...

-[오려내는 힘] 부분 발췌

 

 

젊은 날은 다 가버렸다. 버티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부유하고 있음에도 삶에서 떠내려가지 않는 이유. 나는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어서 버티는 중이다. 진정시켜 줄 문구를 찾아 헤매었다. 

 

그러나 그녀의 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단어들은 어렵지 않고 조합되는 문장도 좋은데, 문장이 문단이 되고 시가 되니 그 전체를 이해하기가 벅차다. 흐름과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다. 내면에 들어가기 힘들다. 혼란스러움에도 손을 잡고 있는 이유는, 새로움을 느낀 탓이다. AI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천편일률적인 문장들을 보다가, 판박이 같은 웹소설을, 그저 그런 음악들을 듣다가 날 것 같은 개성의 글 속에 사람이 썼구나. 감정이 담겨 있구나 하며 온기를 느낀다. 그녀의 언어유희는 퍼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설화 속에 등장하는 요정들의 언어라면, 들리는 언어의 단어들만 건져내어 읽어보면 완연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까? 문장들에 밑줄을 그었다. 파악할 수 없는 문단은 넘겨 버리고. 또 넘기고, 찾고. 그러다 보니, 우리는 노트를 돌려쓰며 서로의 일상과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된 것 같았다. 

 

 

내가 안고 있으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
숨소리가 느껴진다

나는 나도 생각이라는 것에 잠겨보고 싶다
확실히 가라앉아 떠오르지 않을 힘으로
나를
띄어 올리려는 무거운 손에 저항하여 
...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생각 틈틈이

내게서 놓여난 것들을 배웅한다

내가 안고 있으면, 살아 있는 것
안겨 있으면서 
날 살리던 것 
...
-[진흙 옷] 부분 발췌

 

 

이 모든 것은 나의 상상에서 비롯된 해석이다. 작가가 들었으면 큰일 나겠다. 시는 오롯이 전체를 감싸 안아야 할 것일 텐데. 누군가 그녀가 들려주는 새와 요정의 언어를 온전히 알아듣는다면, 나의 엉뚱함에 실소만 하더라도 다행일 거야. 상상력을 상상력으로 맞받아쳤을 뿐이라고 어깨를 으쓱 대야지.

 

시집을 내려놓자, 뒷커버가 눈에 들어왔다. 

 

소리 내어 읽기
피부부터 천천히
모르는 목소리
모르는 말 흐르는 것 듣기

바뀌어보기 

 

 

읽는 방법이 달랐던 거였어? 소리 내어 다시 읽어봐야겠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중에서

 

 

 

김복희

1986년 태어나 2015년 『한국일보』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희망은 사랑을 한다』 『스미기에 좋지』 『보조 영혼』이 있으며,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작가소개 출처: 알라딘 북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464163

 

보조 영혼 | 문학과지성 시인선 616 | 김복희

2015년 『한국일보』신춘문예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해 천진하고 희귀한 시선으로 평단과 독자의 주목을 한 몸에 받으며 시, 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해온 김복희 시인의 네번째 시집

www.aladin.co.kr

 

[보조 영혼] 시집에 어울리는 가수를 떠올렸다. Keren Ann이었다. Not Going Anywhere. 그 노래의 알 듯 말 듯한 신비함이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회가 밀려드는 하루를 살았어도, 감사하게 하루를 마쳤다고. 어디 가지 않았고. 남들처럼 떠나지 않았고. 난 오늘도 감사하게 위로를 주는 노래를 듣고, 새로운 시를 읊었고, 독서를 했고, 피아노를 쳤고, 아직도 하고 싶은 많은 일들로 나를 바쁘게 하고 있다고. 결과적으로 감사함이 충만한 하루였다고. 

 

https://www.youtube.com/watch?v=hxgYg15FQA4